[번역] 2013 부산국제영화제 리뷰 : <사이비>, 황량하면서도 통렬한 경험이었다 - TWITCH FILM

5 October 2013
***<사이비>개봉을 축하합니다 ^_^


2013 부산국제영화제 리뷰 : [사이비], 황량하면서도 통렬한 경험이었다

영한번역 이준호 (voidstrider@gmail.com)
2013, CC-BY-NC-SA

끔찍한 일이 도처에서 횡행하지만, 이를 무시하기 또한 쉽다. 가끔은, 눈앞에 당면한 일도 바로 보기 어려울 때가 많다. 인디 영화, 그중에도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작품들은 흔히 현실세계를 곧이곧대로 담아내면서 관객들을 계도하려 하지만, 항상 제작자들의 의도가 통하진 못한다. 실패하는 이유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 문제이거나, 장면구성이나 연기 탓일 수도 있겠다.하지만, 무엇보다도 작품을 관람하는 우리 탓인 경우가 많다. 수십 년 동안 비슷한 경향으로 만들어진 작품은 이어지는데, 밋밋한 작품을 기피하려는 관람 경향은 이야기의 힘을 희석시키는 것이다.

2011년, 한국의 신예 애니메이션 감독 연상호는 [돼지의 왕]을 통해 등장했다. [돼지의 왕]은 한국 고등학교에서의 위계구조와, 고질적인 폭력을 적나라하게 다뤘다. 지브리의 알록달록함이나 픽사의 향수어린 정감 같은 것은 모조리 증발한 연상호 감독의 독특한 애니메이션 스타일은 꾸밈없고, 퍽퍽한 듯 하면서도 간결했다.
거친 동세는 사실적이면서도, 색다른 접근방식 때문인지, 아주 강렬했다. 올해, 연상호 감독은 신작 [사이비]로 돌아왔다. 작품은 데뷔작과 많은 부분을 공유하면서도, 더 깊숙이 어두운 진실을 향하고 있다.

한 마을이 댐 건설로 수몰 될 예정이다. 한 사람이 마을에 나타나, 마을사람들을 상대로 구원과 천국행을 약속하는 선교행위를 시작하는데, 보상금을 헌납해야만 천국 가는 자리에 낄 수 있다고 한다. 또 한 사람이 마을로 돌아온다. 망나니같은 사내는 가족들을 위협하고, 만나는 주민들 마다 싸움을 걸고, 시비를 건다. 사내는 교주를 보자마자 사기꾼인 것을 알아채지만, 사내의 술주정과 욕지기에 이골이 난 주민들은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돼지의 왕]이 삭막했다면, [사이비]는 아주 황량할 정도다. 작품을 채운 내러티브는 너무나 절망적이고, 등장인물들은 처절하고 비루하다. 연상호 감독은 고국을 그다지 예쁘게 그려내지는 않는다. 확고한 비관주의자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다. 다만, 이야기가 분노에 차있을지 몰라도,이에 접근하는 감독의 시선까지 분노에 사로잡혀있지는 않다. 감독의 시선은 사건의 찌들고 남루한 모습을 마주하고선, 슬픔과 함께 단념하는 쪽에 더 닿아있다.

작품은 도입부에서 젊은 목사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목사는 떠돌이 개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듯한데, 교주가 설교를 하다가 그에게 쇼를 시작하라고 명한다. 개는 꼼짝없이 신도들에게 잡혀 머리를 맞아 죽는다. 예배 후에 나눠먹을 제물이 된 거다. 이 짧은 장면은 앞으로의 내러티브를 암시한다. 단순명료하고, 황량하며, 강렬하다. [사이비]에 나오는 인물들은, 옆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일에 맞서기 보다는 냉담하게 외면해버리는 편을 택한다. 우리 다수가 비슷한 경험을 적지 않게 가진 만큼, 오프닝 시퀀스는 강렬했다.

작품 전반에서, 주제를 둘러싼 다양한 변주가 요지경처럼 펼쳐진다. 종교, 마을 내 정치, 강제 성구매, 위계구조, 알콜중독과 도박 등이 쏟아져 나온다. 모든 상황이 갈 곳 없을 만큼 간 후에도, 연상호 감독은 관객을 더 음습한 곳으로 끌고 들어간다. 압도적이라고 할 순 없을지라도,끔찍이 인상적이었다.

[사이비]는 데뷔작에 이어 사회의 병폐를 깊고도 다채롭게 조명한다. 데뷔작과 매우 흡사하기에, 전작을 불편해했던 관객들까지 돌려놓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이런 방식의 작법은 아무나를 위한 건 아니다. 그럼에도 팬들이나 새로운 관객 모두에게, 연상호 감독의 신작은 전작을 뛰어넘는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이곳저곳에 심어놓은 비틀기와 풍성해진 기교로 짐승의 폐부를 더욱 후벼 파는 [사이비]는, 충격적이었던 데뷔에서 한걸음 더 나아갔다.


원문보기(Original Article)-

Busan 2013 Review: THE FAKE Is a Bleak and Devastating Experience By Pierce Conran, TWITCH FILM, 2013.10.4
http://twitchfilm.com/2013/10/busan-2013-review-the-fake-is-a-bleak-and-devastating-experience.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