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uardian] Film 2013. Jan. 22.
한국 애니메이션, 마침내 볕들 날 올까?
일본 아니메에 오랫동안 가려 있던 한국 애니메이션이 점점 힘이 실린 펀치를 날리기 시작했다. 신작 {돼지의 왕}이 한국애니메이션의 상황을 눈 앞에서 보여주는 듯하다.필 호드 Phil Hoad | 한글번역Translation 이준호 LeeJunHo
한국 애니메이션, 마침내 볕들 날 올까?
일본 아니메에 오랫동안 가려 있던 한국 애니메이션이 점점 힘이 실린 펀치를 날리기 시작했다. 신작 {돼지의 왕}이 한국애니메이션의 상황을 눈 앞에서 보여주는 듯하다.
필 호드 Phil Hoad | 한글번역Translation 이준호 LeeJunHo
슬픈 일이지만, 한국 애니메이션이 가장 널리 알려진 사연은 2010년, 뱅크시 덕분이다. 뱅크시 필름에서 <심슨가족>오프닝 타이틀을 제작한 적이 있는데, 오프닝에서 가난에 허덕이는 아시아지역 작가들을 작업장에 잔뜩 가둬놓고, 고혈을 짜내며 폭스TV에 납품할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뱅크시는 예의 슬로건처럼 단순화된 도덕관을 갖고 작업을 한 것이지만, 한국애니메이션이 남의 일을 도맡아 해왔다는 점은 사실이다. 실제로 1989년부터 <심슨가족> 시리즈의 원화 작업 일부를 서울의 애이콤 스튜디오(AKOM Studio)에서 맡아왔다. 물론 오프닝에 묘사된 노역장하고는 거리가 멀지만, 뱅크시는 한국애니메이션이 주로 하도급 일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상황을 짚어냈다.
이웃 일본이 바로 옆에서 거대 괴수처럼 지축을 울리며 눈을 부라리는 바람에(2005년 일본 애니메이션의 해외 판매규모는 2억 5천 만 달러에 이른다) 한국애니메이션은 패밀리 가이(Family Guy)나 저스티스 리그 언리미티드(Justice League Unlimited)같은 미국 TV 쇼를 빨리 공급하기 위한 외주 납품업체로 영영 2인자 자리에 머무는 듯 했다. 남한 업체들은 심지어 외주 받은 물량을 북한에 다시 넘기기도 했다. 이런 내용은 기 들릴(Guy Delisle)의 뛰어난 그래픽 노블 <평양:프랑스 만화가의 좌충우돌 평양 여행기(이승재 옮김, 문학세계사)> 에도 실려 있다.
그러나 지난 2년 사이, 한국애니메이션이 잠에서 깨어나는 모양이다. 2011년 작, <마당을 나온 암탉>은 농장에서 도망친 암탉이 새끼 오리를 받아들여 키우는 이야기인데, 가까스로 전형적인 흥행 루트를 따라간 듯하다. 항상 일정한 수요가 담보된 가족영화 시장에 초점을 맞췄고, 그 과정에서 한국애니메이션 사상 최대 흥행작품으로 등극했다. 이전 기록 보유작은 한국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이기도 한데, 바로 1967년에 나온 <홍길동>이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주요 시장 중 하나인 중국 진출에도 성공했는데, 중국에서 상영된 첫 한국애니메이션이 되었다. 한편, 2011년 개봉한 <소중한 날의 꿈>}은 불안에 흔들리는 소녀 운동선수의 성장기를 그린 작품으로 여러 국제영화제에서 주목받았다.
독자들은 여기서 어떤 경향성을 읽을 텐데, 부진의 원인은 분명 한국 애니메이터들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번 주 영국에서 공개된 <돼지의 왕>이 보여준 충격적인 방향성에서 열등감 콤플렉스를 엿볼 수도 있다. 신예 연상호 감독의 염세주의적 애니메이션으로, 고등학생들을 소재로 한 싸움, 욕지기, 성폭력과 총체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자기파괴를 보여주고 있다. 한국 교육제도는 유복한 집안 출신의 우두머리 ‘개’가 ‘돼지’를 착취하며 지배하는 구조로, 무정하고 강고한 약육강식의 어른 세계를 위한 연습장 같다. 애니메이션만으로 이런 강렬한 주제를 갖고, 뒤틀리고 인상적인 표정으로 극한 감정을 짜냈다. 이 모든 것이 13만 달러라는 적은 예산 안에서 이뤄졌다.
분명히 <강남 스타일>은 아니다. <돼지의 왕>은 일견 일본의 쓰나미 드라마 <두더지(Himizu)>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미스틱 리버(Mystic River)>에서 영감을 얻은 것 같다. 혹은 고교 트라우마 이야기 중 최고의 찬사를 받은 <올드보이>가 나온 한국의 어두운 구석과 맥을 같이하는 듯하다. 한국은 ‘익스트림 아시아’라는 꼬리표로 잔혹한 작품에 관한 한 세계무대에서 신뢰를 얻고 있지만, 미스터리인 것은 왜 한국이 전도유망한 소프트 파워 수출상품인 애니메이션에 대해 영화만큼 열정적인 지원을 보내지 못하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한국 애니메이션은 일본 수준의 명망을 누려본 적이 없다. 초기에 봇물 터지던 장편 애니메이션도 70년대 TV에 기반을 둔 경쟁체제가 들어서면서 모두 무너졌다. 지금은 비디오 게임 산업이 젊은 창작자들에게 더욱 매력적이다. 한국은 캐릭터 창작 분야에서도 나름의 계보를 쌓아가고 있는데, CGI 캐릭터인 펭귄 뽀로로나, 마시마로(마쉬멜로와 토끼의 이종교배 물로 보면 이해가 빠르다)모두 글로벌 브랜드 상품이 되었다.
놀라운 것은, 한국 애니메이션이 규모로는 세계 3위라는 점이다. 미국과 일본 다음이다. 한국엔 분명 재능 있는 인재 층이 있고, 가능성 또한 잠재되어 있다. 하지만 국내 애니메이션 작품의 성공이 희박한 것을 보면, 호응하는 관객층도 있는지는 의문이다. 한국의 지브리 스튜디오가 불가능 할지라도,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은 중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독립적인 발상과 이방인의 신선함이 현재로써는 특색이 될 수 있다. <돼지의 왕>은 이러한 날카로움의 힘을 잘 드러내 보였다.
원문보기(Original Article)-
South Korean animation: is the underdog finally having its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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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크시 필름의 <심슨가족> 오프닝 :-)
[알림] 2013년 1월 23일, 본 기사에서 남한을 '은둔의 나라(Hermit nation)'라고 표현한 부분을 바로잡았습니다. - 가디언